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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놀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

동글이가 말해봐 를 읽고...

퇴근하고 나면 사랑이의 손에 떠밀려, 놀이방에서  아이와 같이 소꿉놀이를 합니다. 
사랑이는 이 놀이를 '아빠 놀이' 라고 부릅니다. 와이프는 왜 아빠 놀이인지 기막혀 하고는 하죠
엄마 놀이도 아니고 엄마 아빠 놀이도 아닌 '아빠 놀이' 입니다.

와이프가 전업 주부라서 늘 보는 것이 엄마의 하루일과니까 당연히 엄마를 따라하고 싶겠죠.
게다가 여자아이라서 그런지 음식 만드는 일, 빨래, 방 청소 같은 일에 많은 흥미(?)를 보이고는 합니다.
키즈카페에 가면 제일 먼저 아이들용 주방 미니어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하니까요

와이프에게 물어보면, 자기와는 소꿉놀이를 하자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야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아이가 엄마의 역할을 하고 싶은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아무래도 민망하고, 창피할 거라는 추측을 해 봅니다.

아빠 놀이에서 사랑이는 '엄마'가 됩니다. 아빠인 저는 '애기' 가 되구요. 
가끔 '아빠'를 해보라고 할 때고 있지만 애기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애기인 저를 앞에 두고, 맛있는 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재워주기도 하고.
울지 말라고 하며 시장에(혹은 회사에) 다녀온다고 저를 다독이기도 합니다.

병원 놀이가 같이 포함되기도 하는데, 그 때도 저는 항상 애기의 역할을 합니다.
사랑이는 '애기야 아퍼?' 라고 한번 물으면, 무조건 아픈 척을 해야 합니다.
'아니 안아파요...' 이렇게 대답해 봤자 '애기야, 애기는 지금 아픈거야! 아퍼!' 라고
아픈 역할을 하기를 강요합니다.
아픈 애기에게 청진기도 대 보고, 입을 벌리라고도 하고, 주사도 맞추고, 
손수건으로 열을 식히는 흉내도 내 보곤 합니다.

아빠는 사실 애기 흉내를 잘 냅니다. 그래서 아이가 더 아빠놀이에 열광하는 지도 모르죠.
밥 먹기 싫다고도 하고, 엄마가 시장에 간다고 우는 척도 하고
병원에서는 주사가 너무 아프고 무섭다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그럴 때 엄마가 된 우리 사랑이는, 대견하게도 우는 애기아빠를 달래고 다독입니다.
'금방 다녀올거야, 울지마, 뚝. 시장에서 맛있는 거 사올게'
'차 빼고 금방 올게(!)' -- '차 뺀다' 는 어디서 들었는 똑같이 흉내를 내네요
'안아프게 해줄게, 애기야... 아프면 주사 맞는거야~!'

라는 어른의 말을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과 목소리로 흉내를 냅니다.
흉내인지, 정말 속마음도 닮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빨리 동생을 갖은 누나로, 여리고 섬세한 여자 아이의 마음으로
너무 일찍 철이 들어가는 슬픔을 그렇게 억누르고 다스리고 있다는 생각에
안스럽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사실 아빠 놀이에 성의 없는 연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퇴근하고 놀아준다는 것이 참 귀찮기도, 피곤하기도하고, 애기 흉내를 내는 것 자체가 썩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저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데 아이가 아빠 놀이를 강요하며 늘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할 때
나와 우리 아이가 너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하며 조급해 집니다.

아빠놀이를 하며, 아빠로서 어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가 역할 놀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상처를 위로받고
하지만, 그 시간이 연속극처럼 진부한 상황극의 연속이 아닌
인생을 발견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멋진 무대로 바꿀 수가 있을까요?


어제도 잠을 못자고 30분 이상을 버티다가, 결국 11시에 거실로 뛰쳐나온 사랑이.
피곤함과, 나의 시간을 못 갖는 야속함과, 나의 계획에 대한 조급함에
또다시 화를 내고, 울게 하고, 아빠를 무서워하게 했지요.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자존감을 주지 못하고...
아빠의 눈치를 보는 아이, 비맞은 어린 양처럼 상처입은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을, 나를 희생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발전시키고 나를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시간으로
만들도록 노력 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잠들어 있는 시간을 아쉬워 하고
아이가 깨서, 놀아달라고, 애기가 되어달라고 조를 때
웃으며, 기꺼이 가장 멋진 애기가 되어줄 수 있겠지요.






덧글

  • encounters 2010/03/09 00:29 # 삭제 답글

    '아빠놀이를 하며, 아빠로서 어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 가슴에 와닿는 질문이네요. 저는 아기가 백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조금씩 고민이 됩니다. 아기랑 놀아주면서 정말로 재미난 것을 많이 하고 싶은데, 아이의 선호가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 선호를 발견하면서도 아빠 입장에서 변화를 주어가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 사랑아빠 2010/03/09 08:59 #

    아기가 100일도 안되었는데, 벌써 그런 고민을 시작하신다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빠가 되실 거에요. 전 아이가 백일일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키우는데만도 급급했죠. 저는 아이가 이쁜줄도 몰랐어요, 당황스럽고 무서웠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것과 정말 많이 다르죠.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이 있는데 아이가 따라주지 않을 때는 정말 당황스럽기도 하구요. 그래도 8:2 의 비율로 아이 우선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의 장점으로 잘 성장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에 투자하면 결국 다른 아이와 같아지지 않을까요.
    아이 우선으로 놀아주다보면,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습니다. 부모도 인간인데,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즐겁고 흥이나지 않겠어요? 아빠놀이를 하다보면 정말 지겨워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놀이에 여러 주제를가져오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많이 해요. 병원 놀이, 김밥 놀이, 소방차 놀이 등등... 힘들때가 많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이기고 순간 순간의 게으름을 경계해야 겠지요..
    무엇 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한 시간, 한 시간은 가장 예쁜 아이의 시절을 떠나보내는 한 시간 한 시간입니다. 아이가 가장 사랑스러운 지금을 가장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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